여행/2009년 미국

일곱째날, 귀환중

실마리 2009. 11. 6. 13:00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도나 시내와 맞은 편의 붉은 가로줄이 쳐진 거대한 암석을 바라보며 아침을 간단히 먹은 다음 체크아웃하고 공항 근처의 돌산에 잠시 올라봅니다. 세도나에는 볼텍스(vortex)라 고 하는 지구의 에너지가 많이 모여있는 곳이 4곳 있다고 합니다. 어제 저녁 보았던 대성당석을 포함해서 공항 근처에도 한군데 있다고 하는데 도로 옆 자동차들이 여러대 주차되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근처 돌산에 올라 보니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쉬면서 시내를 구경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히 여기라고 표시되어 있는 지도는 없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잠시 앉아있어 보았지만 온몸에 지구의 에너지가 휘감아 나오면서 강철같은 몸을 가지게 된다거나 머리가 맑아지면서 인생의 모든 것을 깨닫게 되거나 전생을 기억해내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만 세도나 시내를 바라보며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을 아쉬워했습니다.

에어포트 볼텍스(로 추정되는 곳)에서. 가운데 나무들 사이에 집들이 있는 곳이 세도나 시내.


숙소에서 바라본 세도나의 풍경, 가장 오른쪽 바위는 커피포트석으로 불리운다.



세도나에 유명한 곳중 하나가 성십자 예배당(Chapel Of The Holy Cross) 입니다. 네비게이션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해 간단한 관광지도를 참고 삼아 공사중인 시내를 떠돌다 찾지 못한채 차를 잠깐 세우고 지도를 보고 있으니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아주머니 한분이 창문을 두드리고 무엇을 도와줄지 물어봅니다. 세도나가 미국 부자들이 은퇴후 인기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과연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도 고마웠지만 우아하게 나이를 먹어 몸매도 날씬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찾아간 예배당은 생각보다 작고 완전히 열려있는 공간으로 산 한쪽 기슭에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예배시설과 지하의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나와 이제는 오늘의 숙소인 LA 근처 팜 스프링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성십자 예배당.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골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뒤쪽에서 바라보면 대성당석을 겨누고 있는 대포처럼 보인다.



세도나에서 남쪽으로 달려 피닉스에서 다시 동쪽으로 뱡향을 바꾸어 계속해서 심심한 풍경을 달려가는데 목도 따갑고 몸이 영 좋지 않습니다. 모레에 빠진 차를 빼려고 고생한 다음부터 조금씩 목이 따가운 느낌이 있었는데 무리한 일정과 운전으로 몸에 무리가 간 모양입니다. 집사람과 잠시 운전을 바꾼 다음 곧 두어시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기절하다시피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은 좀 나아졌습니다만 집사람이 기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동차의 트립 컴퓨터는 20마일 정도를 더 달릴 수 있다고 하는데 설상 가상 갑자기 도로까지 막힙니다. 가다 서다를 한참 반복하는 도로에서 기름만 낭비하다보니 이러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서면 또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란 생각에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끈채 차가 빠질때까지 기다릴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조금 더 가니 도로 공사중이라는 안내가 보이고 곧이어 편도 이차선의 한차선을 막고 느긋하게 공사중인 인부들이 보입니다. 공사 구간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지는 도로. 조금 더 달려서 주유소가 있는 휴게소에 들러 주유를 마칩니다.

팜 스프링스는 작은 오르막을 넘어서니 갑자기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도로를 깔고 엇비슷한 집들을 지어놓은 도시가 주변의 황무지와 바로 접하고 있고 내부에는 쇼핑단지와 주거단지가 구분되어 있어 맥주 한캔을 사려고 해도 차를 몰고 가야하는 미국식 도시입니다. 풍요로울지는 모르지만 아기자기한 동네의 느낌이 없고 엇비슷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우리네 아파트를 널리 펼쳐놓은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 심시티에서 만들던 도시의 느낌이랄까요. 며칠동안 지평선과 띄엄띄엄 흩어진 인가만 보다가 도시를 보아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소에 체크인 한 다음 패키지 여행의 단골코스라는 데저트 힐스 프리미엄 아웃렛을 구경하러 갑니다. 팜스프링스에서 이삼십분 정도 떨어진 아웃렛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풍력 발전기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야말로 수백개, 어쩌면 천개 단위가 될것 같기도 한 다양한 모양새의 풍력 발전기들을 보고 있으니 녹색산업이라면 이런쪽으로 투자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과 구름을 새빨갛게 물들인 멋진 노을에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아웃렛에 도착하니 수십개의 브랜드 가게들이 벽을 이루며 주차장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몇군데 들러 보았는데 아는 브랜드들은 국내와 비교해서 반값이나 뭐 그렇게 싼것 같지는 않고 비싼 가격의 물건들은 다 모르는 브랜드들이라 적당히 한 바퀴 둘러보고 집사람의 가방 하나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아웃렛은 같은 크기의 건물이 옆에 하나 더 있더군요. 반쪽만 둘러본 셈이었지만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몸도 피곤해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을거라 위안을 삼아 봅니다.

팜 스프링스 근처의 풍력발전기들.


일곱번째날 이동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