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시쯤일까. 요란한 새소리에 눈을 떴다. 창을 열고 베란다에 나가보니 주변이 온통 새소리다. 잠시 후 바다 한쪽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숙소의 방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일출을 배경으로 고기잡이에 나선 배를 바라보고 있자니 혼자지만 행복한 기분이 든다. 우리네 시골도 이런 곳이 많이 남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시골은 모두가 비슷비슷한 식당과 허울만 그럴싸한 축제 일색을 뿐, 도시와 다른 시골의 생활을 느끼고 조용히 휴식을 취할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보고싶은 좋은 관광지는 관광객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제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왼쪽 정강이만 부었을 뿐, 오늘도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다.
7시 부터 시작되는 조식. 1층에 마련된 식당에 가 보니 테이블위에 몇개인가의 방번호가 써 있고 간단한 식사가 차려져 있다. 아침을 먹고 숙소 주변을 간단히 산책한 다음 오후 출발시간까지 뭘 할까 고민하다 시간 되는 데로 대마도 북쪽 해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일본의 100대 해수욕장에 뽑혔다는 미우다 해수욕장. 숙소에서 바로 연결되는 길은 중간에 공사중으로 막혀 있어서 히타카츠 방향으로 되돌아나와 돌아가야 했다.
얼마후 도착한 미우다 해수욕장은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해수욕장으로 맑은 물과 함께 수심이 얕아 가족끼리 놀러오면 좋을 것 같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청소원외에 다른 사람은 없다. 해수욕장 인근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구석 해안가에 쓰레기들이 보인다. 한국의 쓰레기들이 대마도까지 떠내려간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 혹시하는 마음에 조심조심 쓰레기들이 있는 해안가에 가 보니 쓰레기는 대부분 페트병, 스치로폼, 고무 등으로 배에서 버려진것 같았다. 페트병의 국적을 살펴보니 대략 2/3 정도가 한국산이었고 나머지는 일본산이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많은 양의 쓰레기가 대마도 해안가에 떠내려간다는 것은 사실일 듯. 382번 국도 길가에도 많은 양의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담배꽁초부터 빈캔, 페트병, 소파 심지어 냉장고 까지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사람들도 쓰레기를 버리는 건 마찬가지. 버리는 사람이 약간 더 작고 자발적으로 치우는 사람이 조금 더 많다면 결과적으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어제와 달리 382번 국도를 벗어나서 일까? 바닷가를 지나는 작은 도로에 마주치는 차량은 한시간에 몇대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그렇게 심한 언덕도 없이 몇개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자 어느덧 한국전망대로 가는 길이 갈라져 나온다. 전망대를 향한 좁은 도로를 올라가는데 웬 아주머니 한분이 산에서 꽃을 따서 내려온다. 잠시 목례를 하고 전망대를 향해 가는데 옆에 나란히 서서 (당연히) 일본어로 계속 말을 하는데 (또 당연히) 전혀 알아들을수가 없다. 잠시후 나타난 전망대는 용두산 공원의 팔각정같이 생겼다. 화창하고 맑은 날씨라 부산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물안개 때문인지 부산은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 옆에는 조선시대에 인근 앞바다에서 조난당한 통역사 일행의 위령탑이 있는데 아까 아주머니가 꺾어온 꽃들이 앞에 가지런히 장식되어 있다. 관리인은 아닌 듯 하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당번제로 관리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원봉사일까. 자신의 마을을 깨끗하게 관리하려는 그들의 마음가짐은 배워도 좋을 것 같다.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는데 옆의 잔디밭에 여기저기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이 가보니 C1 소주병, 빈 도시락, 오렌지 껍질… 단체관광객이 여기서 점심을 먹고 버려놓은 것 같다. 가이드도 있었을테고 분명히 차에다 싣고 여기까지 왔을텐데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이런 행동들이 우리나라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아니 그냥 이웃나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마음이 씁쓰레 하다. 되는데로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둔 다음에 내려왔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서 일까. 도로 한곳에는 갖가지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다. 매일 매일 하늘, 바다, 꽃, 동물들과 계속 접하며 자란 아이들과 도시에서 자연과 단절되어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다를 것이다. 매일 학교와 학원을 버스로 다니는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진다.
어느덧 어제 지나친 382번 국도에 다다랐다. 슈퍼에서 도시락을 사서 바닷가에 앉아 점심으로 먹고 히타카츠에 도착하니 출항시간 까지는 아직 2시간 정도가 남아있다. 동네 여기 저기를 둘러보고 언덕위에 있는 신사에 올라가 잠시 쉬다가 부둣가에 가보니 부산행 배가 이미 도착해 있다. 큰 여객선이 한척 접안해 있는데 새 배는 아니지만 색끈이 장식되어 있고 여기 저기서 초등학생 부터 고등학생 정도까지의 아이들이 부둣가에 모여든다. 처음에는 배가 새로 취항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임기를 마치고 본토로 돌아가는 선생님에 대한 환송회를 하는 모양이다.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져 보내는 사람들은 선생님께 박수도 쳐 드리고 (응원단처럼) 응원도 하고 만세도 부르고 있고 선생님들은 답사를 하는 중 눈물을 닦아 내기도 한다. 환송이 끝난 선생님들은 배에 탑승해 한명씩 묶어놓은 색끈 앞에 서고 아래의 학생들은 각자 색끈의 끝을 나누어 잡고 있다. 이윽고 출항하는 배. 길게 늘어지며 이어지던 끈은 어느 순간 보내는 사람의 손끝에서 빠져나가고 보내는 사람 떠나는 사람 모두 배가 멀어질때까지 열심히들 손을 흔들고 있다.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겨져 있는 환송식을 엿본 것 같다. 잠시후 출항할 때 보다 두배 정도의 승객을 태운 배를 타고 돌아왔다.
여행을 다녀온지도 어느덧 두달이 다 되어간다. 가끔씩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헐떡이며 자전거를 밀고 언덕길을 올라가던 순간이 생각난다. 일상이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나를 둘러싼다고 느껴질때면 홀로 비를 맞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잘곳을 걱정하며 페달을 밟고 또 자전거를 밀었던 그때가 그리워질때가 있다.
구글 어스에서 조사한 여행과 관련된 사실들
-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츠까지의 382번 국도거리 – 90Km
- 첫째날 달린 거리 – 40Km
- 둘째날 달린 거리 – 53Km
- 세째날 달린 거리 – 29Km
- 2박 3일간 총 여행 거리 – 112K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