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뒤척이며 몇번이나 깼다가 다시 잠들었을까요. 7시가 좀 넘은 시간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깹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견인트럭이 준비되었으니 차를 꺼내서 계속 여행을 하라고 합니다. 엔진이 고장난것 같다고 하니 그러면 계획을 다시 세워 나중에 다시 전화를 준다고 합니다. 대충 씻고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있으니 다시 전화가 걸려와
그랜드 정션(Grand Junction)이란 곳의 렌트카 사무실에 차가 준비되어 있으니 트럭으로 차를 꺼내서 거기까지 견인한 다음
준비된 차를 타라고 합니다. 주도로에서 벗어난 곳이라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니 제가 함께 동행해야 한다고 하며 자동차
수리비는 렌트때 든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만 견인 트럭비용은 제가 부담해야 한다며 내가 거기에 동의를 해야 일이 진행된답니다. 어쩔수 없이
동의한 다음 한시간이 조금 모자라게 기다리고 있으니 커다란 견인 트럭이 한대 도착합니다. 모아브 주소가 옆에 적힌 낡은 트럭은
상당히 무뚜뚝한 백인 운전수가 몰고 있었고 상당히 큰 트럭이었지만 기어봉이 바닥에 있어 앞 좌석에 탈수 있는 사람은 운전사를
포함해 넉넉하게 2명, 좁게 3명정도 였습니다. 조수석에 3사람이 끼어앉아 있으니 무뚜뚝한 운전사는 잠시 쳐다보더니 별 말은 않고
그냥 출발합니다. 도로에 있는 약간의 굴곡에도 통통 튀는 트럭에 3명이서 끼어 위아래로 튕기는 모습이 우스운지 한번씩 쓰윽
웃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런저런 음악을 들으며 어색한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찾은 어제의 도로. 오프로드로
접어들어 차가 빠져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달했습니다.
모래 고랑에 빠진 렌트카
엔진이 고장났다고 이야기하니 시동을 걸어보는 견인트럭 운전수.
어제 아무일도 없었던듯 멀쩡하게 시동이 걸립니다. 운전수는 기적이라면서 웃고 우리는 트럭에 끼어 타고 렌트카 대리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즐겁기만 합니다. 견인트럭을 차 뒤쪽에서 세우고 2개의 케이블을 차 아래에 걸어서 천천히 끌어당기니
그렇게 꿈쩍도 하지 않던 차도 어쩔수 없다는 듯 천천히 뒤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한쪽 혹은 양쪽 케이블을 조절하며 얼마간
견인해서 마침내 자동차는 편편한 곳까지 올라왔습니다.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려 트럭을 따라 좁은 오프로드길을 따라 나옵니다.
시동이 걸리고 엔진에 큰 이상은 없어보이지만 에어컨이 고장났는지 찬바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제의 연기는 아마 에어컨이
고장나면서 나왔던 모양입니다. 나오는 길 중간에 작은 둔덕이 있어 견인트럭도 걸리고 저희 차도 걸려서 트럭 운전수가 차를 운전해서
차를 꺼내야 했습니다. 요령을 보니 핸들을 좌우로 조금씩 재빨리 흔드는것과 뒤로 뺀 다음은 빠른 속도로 달려나오는 것인것
같습니다. 마침내 포장된 도로까지 나오게 된 우리. 트럭 운전사는 차가 괜찮은지 기름이 새는곳은 없는지 뒤에서 오면서 보겠다고
합니다. 트럭운전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다음 각자 한참을 함께 달리다 트럭은 휴게소로 빠지고 우리는 원래 목적지인 모아브로
향합니다. 에어컨은 고장났지만 이틀간 몰았던 차를 다시 운전하고 있으니 어제 오후의 실수와 사고를 되물린것 같고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되어 기분이 좋기만 합니다.
모아브 근처에 왔을때 아이가 가이드 북을 찾는데 살펴보니 제 배낭이
없습니다. 엎친데 겹친다더니 아까 트럭을 끌어올릴때 배낭을 벗어놓았는데 차가 올라왔다고 정신없이 그냥 운전해 나온 모양입니다.
집사람과 아이가 트렁크에서 여행가방을 만지는걸 보고 짐은 알아서 챙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제 짐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네요. 잠시
고민한 다음 과감하게 배낭을 버리고 가자고 마음을 먹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팟 터치와 도수가 들어간 고글 등 배낭안의
물건들의 액수도 부담스럽지만 다시 장만하려면 시간도 오래걸릴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배낭을 되찾으러 갔다오려면 왕복 4시간을
허비하게 되니 오늘 하루는 사고지점을 2번 왕복하면서 길에서 보낼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돈이냐 시간이냐 고민하다 지도를 보니 배낭이 있는 곳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95번 도로를 타고 원래 가려고 했던 코스의 중간
지점으로 갈 수 있겠습니다. 결국 모아브 근처의 관광은 포기하고 계획을 수정해 다시 차를 돌려 배낭을 가지러 갑니다.
또 다시 비포장 도로를 운전해 들어가면서 생각해보니 만 24시간 동안 이곳을 3번이나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막 화가 나지만 얼빠진
짓을 한 장본인이 자신이니 어디 화를 낼수도 없습니다. 길이 그나마 평탄한 곳은 차를 몰고 들어가 아까 나오면서 차가 한번
걸렸던 곳 근처에서 차를 세운 다음 집사람과 아이는 차에 있도록 하고 저는 배낭을 가지러 걸어갑니다. 바닥에 발이 푹푹
빠지는데다 그리 많이 덥지는 않지만 건조해서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입술이 바짝 마릅니다. 20여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니
마침내 차가 빠졌던 곳이 나오고 한 곳에 배낭이 태연하게 놓여 있습니다. 배낭을 매고 돌아 나오는데 길 바로 옆 관목에서 토끼
한마리가 뛰어올라 저쪽으로 재빨리 도망갑니다. 마트에서 기다시피 움찔거리기는 토끼만 보다가 사람 가슴 높이로 뛰어 오르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캥거루 같은 토끼를 보니 야생이란 굉장히 거칠고 사나운 환경이라는 생각과 토끼를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바람에 지워져가는 모래위 발자국을 따라 돌아나와 작은 언덕위로 올라서니 마침내 멀리서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겨우 4, 50분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혼자서 적막한 황무지에 다녀오니 새삼스레 나란 존재에 가족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차가 빠진 곳의 주변 풍경, 아마 평생 잊지 못할듯.
돌아나오는 길, 집사람이 길에서 기다리고 있는게 보인다.
무사히 차를 몰고 큰 길로 나와 다시는 이리로 돌아올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제는 95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갑니다. 노랗거나 붉은 암석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요.
갑자기 눈 앞이 확 트이면서 커다란 강이 흐르는 풍경이 나타납니다.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 안내 팻말을 보니 눈 아래 강가의 집
몇채가 보이는 게 한때 하이트(Hite)시였던 것으로 파웰 호수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남은 것이라고 하네요.
하이트라는 이름은 처음 이곳에서 금을 발견한 카스 하이트(Cass Hite)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맥주
회사들과 이곳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웬지 이곳은 맥주와 관련이 많을것 같습니다. 혹시 이곳에 맥주회사를 차리면 물이 좋아 엄청난 성공을 거둘수 있을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차를 타고 달려가니 황량한 황무지에서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풍경으로 바뀝니다. 나무들은 많지만 사람사는
집도 마주치는 차도 거의 볼수 없는 풍경을 또 한참 달려가니 길 한곳에 오프로드용 오토바이가 서 있고 웬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황급히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차를 길 한곳에 멈추니 달려와서 물 한병 얻을 수 있겠냐고 물어봅니다. 차에 있던 미지근한
생수 한병을 주면서 이거면 되겠냐고 어딘가에 연락할 필요는 없겠냐고 물어보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생수 한병이면 완벽하다며
돌아갑니다. 오토바이 엔진의 냉각수가 필요했던것 같습니다. 생수 한병이니 어제 받은 도움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나이가 50은 넘어보이는 백인 아저씨였는데 혼자서 오프로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이 멋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이트 시가 있던 곳의 풍경
심심한 숲길을 좀 더 달리니 마침내 원래 가려고 했던 261번 도로가 나타납니다. 모아브에서
아치스 국립공원과
캐년 랜즈 국립공원의 데드 호스 포인트를 보고 남쪽으로 내려와 95번 도로를 타고
뮬 캐년의 불의 집(house on fire)이
란 원주민 유적지를 보고 서쪽으로 가다 261번을 타는 것이 처음 계획이었는데 이것들은 언젠가로 미루어야 되겠습니다. 사람
키높이 정도의 숲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마침내 모키 덕웨이(Moky Dugway)와 뮬리
포인트(Muley Point)로 가는 길이 나타납니다. 뮬리 포인트는 높은 고원 위에서 산 후안(San Juan)강에 의해 깎여
있는 계곡과 그 너머 멀리 모뉴먼트 밸리 부위까지 광활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가 갔을 때는 엄청나게 센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잠시 풍경을 구경한 후 모키 덕웨이로 돌아와 높은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돌아가면서 내려가는 모키
덕웨이를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옵니다. 산 후안 강에 의해 거위 목 모양으로 깎인 계곡인 구스넥 주립공원을 막 해가 넘어간
어스름에 구경하고 나니 밤이 되었습니다. 어두워져 볼 수 없는 모뉴먼트 밸리를 지나 오늘의 숙소인 카옌타로 갑니다.
261번 도로에서 바라본 북쪽. 두개의 납작한 봉우리를 곰의 귀라고 부른다.
뮬리 포인트의 풍경.
높은 절벽위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엄청나게 불었던 바람. 절벽에 가까운데다 가만히 서 있기가 힘들정도여서 앉아서 기다시피 이동해야 했다.
절벽을 따라 이리저리 굽어내려가는 모키 덕웨이. 오른쪽의 쭉 뻗은 도로로 연결된다.
구스넥 포인트의 풍경.
뮬리 포인트, 모키 덕웨이, 구스넥 주립공원과 모뉴먼트 밸리의 포인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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