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마지막 날이 지나고 토요일 아침 공항으로 돌아와 차를 반납한 다음 좁은 비행기 좌석에 괴로워하며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본 부산의 밤 풍경은 하늘의 절반이 산들과 아파트로 인한 불규칙한 스카이라인으로 가려지고 곳곳에 교회 십자가들이 떠 있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출근해서 몸살, 시차와 싸우면서 쌓여있는 일들을 처리해야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나왔던 견인 트럭비를 포함한 금전적인 부담, 전자 비자 문제, 지갑 분실, 사막에서의 사고 등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생겼고 보려고 계획했던 것들을 다 보지도 못한채 고생도 많이 했지만 가족에 큰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게 다행입니다.

일주일간 렌트카로 달린 거리는 대략 3500Km. 많은 곳을 보았지만 시간에 쫓겨 눈도장만 대충 찍으며 너무 급하게 본것 같아 며칠씩 묵으면서 이곳 저곳을 느긋하게 둘러보는 여행객들이 부럽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실제 풍경에 비해 사진이 너무 초라하게 보여 실망도 많이 했었지만 이제는 사진만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실제의 기억을 되살려 줍니다. 고생한만큼 기억에 남는다고 뜨거운 햇빛아래 보았던 지평선, 곧게 뻗은 도로와 건물들에 의해 가려져 있지 않은 넓은 하늘아래 무심하게 보이던 암석들의 기억은 가끔씩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언젠가 이번에 여러번 보았던 커다란 2인승 오토바이를 타고 이번에 둘러보지 못한 곳들을 포함해서 좀 더 느긋하게 둘러보는 여행을 생각해 봅니다.

이번 여행경로. 다녀오고 나니 일주일만에 돌기에는 조금 버겁다.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도나 시내와 맞은 편의 붉은 가로줄이 쳐진 거대한 암석을 바라보며 아침을 간단히 먹은 다음 체크아웃하고 공항 근처의 돌산에 잠시 올라봅니다. 세도나에는 볼텍스(vortex)라 고 하는 지구의 에너지가 많이 모여있는 곳이 4곳 있다고 합니다. 어제 저녁 보았던 대성당석을 포함해서 공항 근처에도 한군데 있다고 하는데 도로 옆 자동차들이 여러대 주차되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근처 돌산에 올라 보니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쉬면서 시내를 구경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히 여기라고 표시되어 있는 지도는 없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잠시 앉아있어 보았지만 온몸에 지구의 에너지가 휘감아 나오면서 강철같은 몸을 가지게 된다거나 머리가 맑아지면서 인생의 모든 것을 깨닫게 되거나 전생을 기억해내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만 세도나 시내를 바라보며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을 아쉬워했습니다.

에어포트 볼텍스(로 추정되는 곳)에서. 가운데 나무들 사이에 집들이 있는 곳이 세도나 시내.


숙소에서 바라본 세도나의 풍경, 가장 오른쪽 바위는 커피포트석으로 불리운다.



세도나에 유명한 곳중 하나가 성십자 예배당(Chapel Of The Holy Cross) 입니다. 네비게이션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해 간단한 관광지도를 참고 삼아 공사중인 시내를 떠돌다 찾지 못한채 차를 잠깐 세우고 지도를 보고 있으니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아주머니 한분이 창문을 두드리고 무엇을 도와줄지 물어봅니다. 세도나가 미국 부자들이 은퇴후 인기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과연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도 고마웠지만 우아하게 나이를 먹어 몸매도 날씬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찾아간 예배당은 생각보다 작고 완전히 열려있는 공간으로 산 한쪽 기슭에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예배시설과 지하의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나와 이제는 오늘의 숙소인 LA 근처 팜 스프링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성십자 예배당.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골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뒤쪽에서 바라보면 대성당석을 겨누고 있는 대포처럼 보인다.



세도나에서 남쪽으로 달려 피닉스에서 다시 동쪽으로 뱡향을 바꾸어 계속해서 심심한 풍경을 달려가는데 목도 따갑고 몸이 영 좋지 않습니다. 모레에 빠진 차를 빼려고 고생한 다음부터 조금씩 목이 따가운 느낌이 있었는데 무리한 일정과 운전으로 몸에 무리가 간 모양입니다. 집사람과 잠시 운전을 바꾼 다음 곧 두어시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기절하다시피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은 좀 나아졌습니다만 집사람이 기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동차의 트립 컴퓨터는 20마일 정도를 더 달릴 수 있다고 하는데 설상 가상 갑자기 도로까지 막힙니다. 가다 서다를 한참 반복하는 도로에서 기름만 낭비하다보니 이러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서면 또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란 생각에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끈채 차가 빠질때까지 기다릴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조금 더 가니 도로 공사중이라는 안내가 보이고 곧이어 편도 이차선의 한차선을 막고 느긋하게 공사중인 인부들이 보입니다. 공사 구간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지는 도로. 조금 더 달려서 주유소가 있는 휴게소에 들러 주유를 마칩니다.

팜 스프링스는 작은 오르막을 넘어서니 갑자기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도로를 깔고 엇비슷한 집들을 지어놓은 도시가 주변의 황무지와 바로 접하고 있고 내부에는 쇼핑단지와 주거단지가 구분되어 있어 맥주 한캔을 사려고 해도 차를 몰고 가야하는 미국식 도시입니다. 풍요로울지는 모르지만 아기자기한 동네의 느낌이 없고 엇비슷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우리네 아파트를 널리 펼쳐놓은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 심시티에서 만들던 도시의 느낌이랄까요. 며칠동안 지평선과 띄엄띄엄 흩어진 인가만 보다가 도시를 보아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소에 체크인 한 다음 패키지 여행의 단골코스라는 데저트 힐스 프리미엄 아웃렛을 구경하러 갑니다. 팜스프링스에서 이삼십분 정도 떨어진 아웃렛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풍력 발전기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야말로 수백개, 어쩌면 천개 단위가 될것 같기도 한 다양한 모양새의 풍력 발전기들을 보고 있으니 녹색산업이라면 이런쪽으로 투자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과 구름을 새빨갛게 물들인 멋진 노을에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아웃렛에 도착하니 수십개의 브랜드 가게들이 벽을 이루며 주차장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몇군데 들러 보았는데 아는 브랜드들은 국내와 비교해서 반값이나 뭐 그렇게 싼것 같지는 않고 비싼 가격의 물건들은 다 모르는 브랜드들이라 적당히 한 바퀴 둘러보고 집사람의 가방 하나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아웃렛은 같은 크기의 건물이 옆에 하나 더 있더군요. 반쪽만 둘러본 셈이었지만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몸도 피곤해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을거라 위안을 삼아 봅니다.

팜 스프링스 근처의 풍력발전기들.


일곱번째날 이동경로.



어느정도 시차에 적응이 되어 밤에 깨는 일은 없지만 여행은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해가 뜨는 시간에 일어나 잠시 주변을 구경하니 부지런한 관광객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잠들어 있는 집사람과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합니다. 오늘은 빌리지의 서쪽 도로를 살펴보기로 하고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Bright Angel Trail)의 초반부를 잠시 걸어내려가 봅니다. 절벽을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계속 따라가면 멀리 콜로라도강까지 다녀올 수 있다고 하는데 하루만에 다녀오는 것은 무리라고 합니다. 초반부의 길은 아마도 아침에 관광객을 태운 뮬들이 힘을 쓰면서 싸놓은 변들과 그 냄새로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오르막에 유난히 약한 집사람과 아이는 초반에 올려보내고 조금더 아래쪽 트레일을 걸어내려가 봅니다. 대부분이 내려가는 사람들이지만 아래쪽에서 숙박한 듯 커다란 배낭을 매고 올라오는 사람들도 가끔 보입니다. 이삼십분 정도를 내려갔지만 1.5마일 지점에 있다는 휴게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집사람과 아이, 그리고 오늘의 스케쥴을 생각해 보니 더 이상 내려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 걸어올라갑니다. 내리막은 손쉽게 내려갔지만 확실히 오르막은 힘이 배로 들어갑니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에서


계곡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과 그 위의 숙소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의 끝부분,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간다.


그랜드 캐년을 구경하는 관광객들


그랜드 캐년을 만든 콜로라도 강



끙끙대면서 입구까지 올라가니 2004년 보스톤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대에 완주한 여대생이 그해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에서 사망했다는 안내가 붙어있습니다. 충분한 계획을 세우고 여름철에는 40도 까지 올라간다는 한낮을 피해서 충분한 물과 음식물을 가지고 틈틈히 쉬어가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요령이라고 하는군요. 확실히 광활한 풍경이 사람의 거리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계곡의 남쪽 벼랑과 북쪽 벼랑간의 거리는 최소 12Km, 부산에서는 시청에서 김해공항까지의 공간에 거대한 계곡이 자리잡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계곡 안에는 또 여러개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좁은 콜로라도 강이 흐르고 있지요. 가장 아래쪽 지층은 18억년전의 것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오래되기는 했습니다.

조금씩 걷다가 셔틀버스를 타면서 몇군데 서쪽의 관람 포인트들을 보고 다시 빌리지로 돌아와 차를 타고 마지막으로 야바파이(Yavapai) 포인트를 둘러본 다음 남쪽 출구를 통해 빠져나옵니다. 남쪽으로 계속 달리니 동서로 달리는 40번 도로가 나오고 이어 오늘의 목적지인 세도나(Sedona)로 가는 작은 지방도로가 갈라집니다. 키큰 나무들의 숲으로 둘러쌓인 작은 지방도로를 느긋하게 달리다보니 구불거리며 계곡으로 내려가는 도로가 나오고 이어 계곡주변으로 숲속에 숨어 눈에 거슬리지 않는 집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세도나에 들어섭니다. 세도나 시내는 거대한 붉은 암석들로 둘러쌓인 작은 분지로 유타주와는 달리 나무들이 많이 자라 황량한 느낌이 들지 않고 3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는데다가 건물들이 황토색 혹은 붉은 빛을 띄고 있어 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독특했습니다. 세도나 공항 근처의 숙소에 체크인한 다음 대성당석(cathedral rock)을 구경하기 위해 서둘러 바깥으로 나섭니다. 

세도나로 가는 길


나지막한 건물들이 늘어선 시내를 가로질러 흔히 보는 대성당석의 사진을 찍는 포인트인 레드 락 주립공원에 도착합니다. 공원 입구의 매표소에는 이미 퇴근한듯 아무도 없고 자동차 1대당 5달러, 일인당 1달러의 요금을 받는 요금 상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잠시 사진만 찍고 갈건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자동차 요금 5달러 대신 3명 입장료 3달러만 내고 들어 갔습니다. 공원의 잔디밭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삼각대를 놓고 시시각각 변하는 암석의 색깔을 담고 있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겨우 몇장의 사진을 찍고 슈퍼에서 저녁거리와 맥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옵니다. 방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보니 포크나 나이프가 없어 아이가 낮에 주워온 나무 조각을 쪼개 씻어 젓가락과 나이프 대용으로 사용해서 저녁을 먹습니다.

해질무렵 붉게 물든 대성당석


6일째 이동경로



전날의 숙소에 비해서는 값도 비쌌지만 훨씬 안락했던 숙소탓인지 해가 뜨기전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빛이 좋을 무렵 모뉴먼트 밸리를 구경하기로 하고 어제 지났던 도로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뉴먼트 밸리 내부는 나바호족에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지만 도로에서 대충의 풍경을 볼 수 있으므로 굳이 시간을 들여 내부를 둘러보지 않고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습니다.

모뉴먼트 밸리.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몇년째 달리기로 미국 종단을 하던 포레스트가 이제 달리기를 그만두어야 되겠다고 추종자들에게 말하는 곳이고 자전거로 7년 반동안 세계 일주를 한 일본의 여행가가 세계 최고의 자연 풍경으로 꼽은 곳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암석 고원이 오랜 시간동안 비와 바람에 의해 깎여져 나가고 남은 잔해. 존 포드 감독이 만든 서부영화의 배경으로 흔히 등장한다는 네모난 암석을 보고 있으니 왜 이곳을 배경으로 했을지 궁금해 집니다. 배경으로 삼기에 소위 그림이 잘 나와서였겠지만 원주민들의 쇠락을 상징하는 곳으로 그들의 땅에서 영화를 찍지는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 이곳의 땅은 작은 관목들만 조금씩 있을 뿐 황무지에 가깝습니다. 이곳에서 그랜드 캐년의 동쪽 입구까지는 나바호족의 자치구역인데 많은 사람들이 기념품을 만들어 길가의 작은 판자집에서 팔고 있었고 다른 종류의 일거리는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한때는 거대한 대지에서 자연과 함께 살던 사람들은 잊혀지고 없어졌으며 그들의 후손은 조상들을 몰아낸 자들의 생활 양식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관광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상의 방식대로 살지도 못하고 사회의 주류로 올라가기도 힘든 많은 원주민들이 술과 마약에 중독된다는 어디선가의 뉴스가 떠오릅니다. 아메리카 대륙이 지금까지 그들의 땅으로 남아있었다면 원주민들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지금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결국 외부인들의 생활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외부인의 물건에 탐욕스런 자들에 의해 붕괴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현대 생활의 부작용이 자꾸만 드러나는 요즘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순응하면서 살아갔던 그들의 방식이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의 생활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나 사회가 외부 사회에 의해 순박함을 잃어버리기 쉽고 한번 잃어버린 순수함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일겁니다.

포레스트 검프가 미국 종단 달리기를 멈추는 도로


서부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나왔던 곳


원주민 후손들의 생활. 저런곳에서 만든 물건들을 판다.



다시 카옌타로 돌아오는데 강한 모래 바람에 눈앞은 뿌옇고 뿌리채 뽑힌 관목이 길을 가로질러 굴러가는 것이 영판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앤틸로프 캐년이 있는 페이지(Page)를 향해 갑니다. 앤틸로프 캐년은 나바호족의 영토에 있어 일반 개인이 홀로 구경할 수는 없고 나바호족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서 구경해야 합니다. 가끔씩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순식간에 불어난 강물에 의해 사암이 깎여 만들어진 사람 한두명이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계곡으로 위쪽으로는 굉장히 좁은 틈이 나 있어 햇빛이 들어오면 사암의 물결무늬가 다양한 황금빛으로 보여 사진가들에게 유명한 곳입니다.

카 옌타와 페이지는 같은 아리조나주에 위치하지만 카옌타는 유타주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하고 페이지는 아리조나주의 시간을 사용하므로 9시가 한참 넘어서 출발해서 2시간 반정도 달렸지만 11시 쯤 페이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계곡 바닥까지 빛이 내려온다는 11시 반에 출발하는 투어에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여행사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1시반 투어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근처의 대형 마트에서 약품, 고양이 장난감 등을 쇼핑하고 점심을 대충 먹고 나니 어느덧 투어 시작 시간이 되어갑니다. 여행사의 개조한 4륜 구동 트럭의 짐칸에 앉아 10분여를 달려가니 계곡의 입구가 나옵니다.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정오쯤에는 계곡 바닥까지 햇빛이 비치지만 이미 해는 가장 높은 곳을 지나 계곡 위쪽에만 황금빛 빛을 보여줍니다. 가이드는 계곡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다음 이곳 저곳 사진찍기 좋은 포인트들을 안내해 줍니다. 다른 가이드들을 따라온 사람들로 이미 붐비는 그리 길지 않은 계곡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온 다음 다시 사진을 찍으며 입구로 돌아오는데 같은 트럭을 타고 출발한, 캐논 카메라를 든 덩치가 좋고 머리를 기른 동양인이 "사진찍어 드릴께요."라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 차를 렌트해서 일주일간 혼자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드물게 만나는 동양인 대부분이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다 보니 한국인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짧고 즐거운 대화 이후 주차장에서 헤어지고 우리는 오늘의 숙소인 그랜드 캐년을 향해 갑니다.

앤틸로프 캐년의 입구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나온 포인트라는 곳에서 찍은 사진인데 빛이 아쉽다.


그나마 빛이 조금 남아 있는 곳



오후 햇빛을 받으며 거대한 붉은 암석 고원 옆으로 난 길을 한참 달리니 그랜드 캐년의 동쪽 출입구로 갈라지는 길이 나옵니다. 그랜드캐년은 남쪽과 동쪽 2곳의 출입구가 있는데 대다수가 이용하는 남쪽 출입구는 그랜드캐년 관광의 중심부인 빌리지로 연결되고 이곳에서 동쪽, 서쪽으로 길이 나뉘게 됩니다. 서쪽 길은 허밋 레스트라는 곳에서 막힌길로 끝나지만 동쪽길은 계속 이어져서 동쪽 출입구와 연결됩니다. 나바호족의 황량한 사막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 그랜드 캐년의 동쪽 출입구가 있습니다. 출입구 근처에는 그랜드 캐년의 동쪽 가장자리와 나바호족의 사막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데저트 뷰 포인트가 있고 아나사지 원주민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돌로 만든 관람탑이 있습니다. 처음 바라본 그랜드 캐년은 생각보다 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여러 형태의 암석과 계곡을 많이 보고 도착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눈앞에 너무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어 크기 감각이 마비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해가 거의 넘어가는 시점이라 다음 포인트를 보기위해 관람탑은 대충 분위기만 보고 나왔는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데저트 뷰 타워 너머는 나바호족의 땅


해질무렵의 그랜드 캐년



두세곳의 포인트를 서둘러 둘러 보고 다시 한참을 달려가니 마침내 빌리지가 나옵니다. 예전에 깔린 철도역을 중심으로 숙박시설과 관광안내소가 있는 곳인데 깜깜한 밤인데다 가로등도 없는 일방 통행길이 있어 숙소를 찾기 위해 조금 헤매고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에서 페이지의 마트에서 산 미국산 신라면을 아이에게 먹이고 나니 거의 9시가 다 되어 갑니다. 호텔의 식사는 부담스러워서 셔틀버스를 타고 빌리지의 가게에 갔더니 불은 켜져 있지만 벌써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9시 20분쯤 아마도 마지막 셔틀 버스를 겨우 타고 숙소로 돌아와 과일과 이런 저런 것들로 대충 허기를 떼웁니다. 숙소주변을 잠시 구경해 보려고 나오는데 호텔의 바로 앞마당에 몇마리의 사슴 가족과 뮬들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바로 숙소에서 희미한 달빛아래 조용히 풀을 뜯으며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커다란 야생동물을 보고 있으니 굉장히 비현실적인 느낌입니다. 뮬들은 사람들이 부리는 것인지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개의치 않고 먹는데 열중하고 있지만 사슴 가족은 서너발자국 근처까지 다가가니 슬며시 피해 다른쪽에서 계속 풀을 뜯습니다. 이런 아름답고도 비현실적인 느낌은 다음날 아침 그들이 싸놓은 변을 보고 좀 깨어졌습니다만...

5일째 이동경로


지난 밤 뒤척이며 몇번이나 깼다가 다시 잠들었을까요. 7시가 좀 넘은 시간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깹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견인트럭이 준비되었으니 차를 꺼내서 계속 여행을 하라고 합니다. 엔진이 고장난것 같다고 하니 그러면 계획을 다시 세워 나중에 다시 전화를 준다고 합니다. 대충 씻고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있으니 다시 전화가 걸려와 그랜드 정션(Grand Junction)이란 곳의 렌트카 사무실에 차가 준비되어 있으니 트럭으로 차를 꺼내서 거기까지 견인한 다음 준비된 차를 타라고 합니다. 주도로에서 벗어난 곳이라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니 제가 함께 동행해야 한다고 하며 자동차 수리비는 렌트때 든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만 견인 트럭비용은 제가 부담해야 한다며 내가 거기에 동의를 해야 일이 진행된답니다. 어쩔수 없이 동의한 다음 한시간이 조금 모자라게 기다리고 있으니 커다란 견인 트럭이 한대 도착합니다. 모아브 주소가 옆에 적힌 낡은 트럭은 상당히 무뚜뚝한 백인 운전수가 몰고 있었고 상당히 큰 트럭이었지만 기어봉이 바닥에 있어 앞 좌석에 탈수 있는 사람은 운전사를 포함해 넉넉하게 2명, 좁게 3명정도 였습니다. 조수석에 3사람이 끼어앉아 있으니 무뚜뚝한 운전사는 잠시 쳐다보더니 별 말은 않고 그냥 출발합니다. 도로에 있는 약간의 굴곡에도 통통 튀는 트럭에 3명이서 끼어 위아래로 튕기는 모습이 우스운지 한번씩 쓰윽 웃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런저런 음악을 들으며 어색한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찾은 어제의 도로. 오프로드로 접어들어 차가 빠져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달했습니다.

모래 고랑에 빠진 렌트카



엔진이 고장났다고 이야기하니 시동을 걸어보는 견인트럭 운전수. 어제 아무일도 없었던듯 멀쩡하게 시동이 걸립니다. 운전수는 기적이라면서 웃고 우리는 트럭에 끼어 타고 렌트카 대리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즐겁기만 합니다. 견인트럭을 차 뒤쪽에서 세우고 2개의 케이블을 차 아래에 걸어서 천천히 끌어당기니 그렇게 꿈쩍도 하지 않던 차도 어쩔수 없다는 듯 천천히 뒤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한쪽 혹은 양쪽 케이블을 조절하며 얼마간 견인해서 마침내 자동차는 편편한 곳까지 올라왔습니다.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려 트럭을 따라 좁은 오프로드길을 따라 나옵니다. 시동이 걸리고 엔진에 큰 이상은 없어보이지만 에어컨이 고장났는지 찬바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제의 연기는 아마 에어컨이 고장나면서 나왔던 모양입니다. 나오는 길 중간에 작은 둔덕이 있어 견인트럭도 걸리고 저희 차도 걸려서 트럭 운전수가 차를 운전해서 차를 꺼내야 했습니다. 요령을 보니 핸들을 좌우로 조금씩 재빨리 흔드는것과 뒤로 뺀 다음은 빠른 속도로 달려나오는 것인것 같습니다. 마침내 포장된 도로까지 나오게 된 우리. 트럭 운전사는 차가 괜찮은지 기름이 새는곳은 없는지 뒤에서 오면서 보겠다고 합니다. 트럭운전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다음 각자 한참을 함께 달리다 트럭은 휴게소로 빠지고 우리는 원래 목적지인 모아브로 향합니다. 에어컨은 고장났지만 이틀간 몰았던 차를 다시 운전하고 있으니 어제 오후의 실수와 사고를 되물린것 같고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되어 기분이 좋기만 합니다.

모아브 근처에 왔을때 아이가 가이드 북을 찾는데 살펴보니 제 배낭이 없습니다. 엎친데 겹친다더니 아까 트럭을 끌어올릴때 배낭을 벗어놓았는데 차가 올라왔다고 정신없이 그냥 운전해 나온 모양입니다. 집사람과 아이가 트렁크에서 여행가방을 만지는걸 보고 짐은 알아서 챙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제 짐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네요. 잠시 고민한 다음 과감하게 배낭을 버리고 가자고 마음을 먹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팟 터치와 도수가 들어간 고글 등 배낭안의 물건들의 액수도 부담스럽지만 다시 장만하려면 시간도 오래걸릴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배낭을 되찾으러 갔다오려면 왕복 4시간을 허비하게 되니 오늘 하루는 사고지점을 2번 왕복하면서 길에서 보낼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돈이냐 시간이냐 고민하다 지도를 보니 배낭이 있는 곳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95번 도로를 타고 원래 가려고 했던 코스의 중간 지점으로 갈 수 있겠습니다. 결국 모아브 근처의 관광은 포기하고 계획을 수정해 다시 차를 돌려 배낭을 가지러 갑니다.

또 다시 비포장 도로를 운전해 들어가면서 생각해보니 만 24시간 동안 이곳을 3번이나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막 화가 나지만 얼빠진 짓을 한 장본인이 자신이니 어디 화를 낼수도 없습니다. 길이 그나마 평탄한 곳은 차를 몰고 들어가 아까 나오면서 차가 한번 걸렸던 곳 근처에서 차를 세운 다음 집사람과 아이는 차에 있도록 하고 저는 배낭을 가지러 걸어갑니다. 바닥에 발이 푹푹 빠지는데다 그리 많이 덥지는 않지만 건조해서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입술이 바짝 마릅니다. 20여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니 마침내 차가 빠졌던 곳이 나오고 한 곳에 배낭이 태연하게 놓여 있습니다. 배낭을 매고 돌아 나오는데 길 바로 옆 관목에서 토끼 한마리가 뛰어올라 저쪽으로 재빨리 도망갑니다. 마트에서 기다시피 움찔거리기는 토끼만 보다가 사람 가슴 높이로 뛰어 오르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캥거루 같은 토끼를 보니 야생이란 굉장히 거칠고 사나운 환경이라는 생각과 토끼를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바람에 지워져가는 모래위 발자국을 따라 돌아나와 작은 언덕위로 올라서니 마침내 멀리서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겨우 4, 50분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혼자서 적막한 황무지에 다녀오니 새삼스레 나란 존재에 가족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차가 빠진 곳의 주변 풍경, 아마 평생 잊지 못할듯.


돌아나오는 길, 집사람이 길에서 기다리고 있는게 보인다.



무사히 차를 몰고 큰 길로 나와 다시는 이리로 돌아올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제는 95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갑니다. 노랗거나 붉은 암석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요. 갑자기 눈 앞이 확 트이면서 커다란 강이 흐르는 풍경이 나타납니다.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 안내 팻말을 보니 눈 아래 강가의 집 몇채가 보이는 게 한때 하이트(Hite)시였던 것으로 파웰 호수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남은 것이라고 하네요. 하이트라는 이름은 처음 이곳에서 금을 발견한 카스 하이트(Cass Hite)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맥주 회사들과 이곳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웬지 이곳은 맥주와 관련이 많을것 같습니다. 혹시 이곳에 맥주회사를 차리면 물이 좋아 엄청난 성공을 거둘수 있을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차를 타고 달려가니 황량한 황무지에서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풍경으로 바뀝니다. 나무들은 많지만 사람사는 집도 마주치는 차도 거의 볼수 없는 풍경을 또 한참 달려가니 길 한곳에 오프로드용 오토바이가 서 있고 웬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황급히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차를 길 한곳에 멈추니 달려와서 물 한병 얻을 수 있겠냐고 물어봅니다. 차에 있던 미지근한 생수 한병을 주면서 이거면 되겠냐고 어딘가에 연락할 필요는 없겠냐고 물어보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생수 한병이면 완벽하다며 돌아갑니다. 오토바이 엔진의 냉각수가 필요했던것 같습니다. 생수 한병이니 어제 받은 도움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나이가 50은 넘어보이는 백인 아저씨였는데 혼자서 오프로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이 멋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이트 시가 있던 곳의 풍경



심심한 숲길을 좀 더 달리니 마침내 원래 가려고 했던 261번 도로가 나타납니다. 모아브에서 아치스 국립공원캐년 랜즈 국립공원의 데드 호스 포인트를 보고 남쪽으로 내려와 95번 도로를 타고 뮬 캐년의 불의 집(house on fire)이 란 원주민 유적지를 보고 서쪽으로 가다 261번을 타는 것이 처음 계획이었는데 이것들은 언젠가로 미루어야 되겠습니다. 사람 키높이 정도의 숲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마침내 모키 덕웨이(Moky Dugway)와 뮬리 포인트(Muley Point)로 가는 길이 나타납니다. 뮬리 포인트는 높은 고원 위에서 산 후안(San Juan)강에 의해 깎여 있는 계곡과 그 너머 멀리 모뉴먼트 밸리 부위까지 광활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가 갔을 때는 엄청나게 센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잠시 풍경을 구경한 후 모키 덕웨이로 돌아와 높은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돌아가면서 내려가는 모키 덕웨이를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옵니다. 산 후안 강에 의해 거위 목 모양으로 깎인 계곡인 구스넥 주립공원을 막 해가 넘어간 어스름에 구경하고 나니 밤이 되었습니다. 어두워져 볼 수 없는 모뉴먼트 밸리를 지나 오늘의 숙소인 카옌타로 갑니다.

261번 도로에서 바라본 북쪽. 두개의 납작한 봉우리를 곰의 귀라고 부른다.


뮬리 포인트의 풍경. 높은 절벽위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엄청나게 불었던 바람. 절벽에 가까운데다 가만히 서 있기가 힘들정도여서 앉아서 기다시피 이동해야 했다.


절벽을 따라 이리저리 굽어내려가는 모키 덕웨이. 오른쪽의 쭉 뻗은 도로로 연결된다.


구스넥 포인트의 풍경.


뮬리 포인트, 모키 덕웨이, 구스넥 주립공원과 모뉴먼트 밸리의 포인트들

넷째날 이동경로


일어나 창문밖을 내다보니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밝아오고 있습니다. 계곡을 볼 수 있는 가장자리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잠든 집사람과 아이를 깨우지 않고 나가보니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는게 조만간 해가 뜰것 같습니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 집사람과 아이를 깨워 같이 일출을 보고 계곡의 사진을 조금 찍은 다음 숙소로 돌아옵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한 다음 차를 타고 가장 안쪽의 레인보우 포인트부터 몇군데의 세닉(scenic) 포인트들을 구경하면서 바깥으로 나옵니다. 붉은 빛과 흰색이 다양한 조합으로 섞여 있는데다 물과 바람의 힘으로 저마다 독특한 모양을 가진 기둥을 남기게 되었다는게 무척 신기합니다. 둘러본 곳들 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았던 곳은 브라이스 포인트, 바깥으로 돌출된 절벽의 끝에서면 양쪽으로 쭉 펼쳐진 광대한 계곡에 수많은 돌기둥들이 서 있는데 얼핏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게 진시황의 무덤에 있다는 병사의 조각같기도 합니다. 간단히 브라이스 캐년을 구경하고 오늘은 유타주의 12번 도로를 타고 주변을 관람하며 숙소인 모아브(moab)로 갈 예정입니다.

브라이스 캐년의 아침



브라이스 포인트에서 바라본 수많은 후두들


브라이스 포인트



유타주의 12번 도로는 주변 경치가 매우 다양하게 변하는 매우 아름다운 도로로서 겨울철에는 폐쇄되기도 한다고 하니 늦가을에서 봄까지는 미리 통행가능 여부를 알아보고 가야하겠습니다. 초반의 농촌풍경에서 황무지가 나왔다가 밝은 회색이나 붉은 색의 암석지대, 은행나무와 침엽수가 가득한 산까지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드라이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풍경을 구경하며 한참을 달려가다 보니 온통 붉은 돌산과 바닥으로 이루어진 마치 화성과 같이 낯선 풍경이 나오는데 캐피톨 리프 캐년(Capitol Reef Canyon)의 바깥쪽이라고 합니다. 잠시 세닉 포인트에 차를 세우고 주변 경치를 구경한 다음 네비게이션에 다음의 목적지인 고블린 밸리(Goblin Valley)를 입력하고 출발합니다. 고블린 밸리는 다양한 크기의 버섯모양 돌기둥 들이 서있는 곳으로 그룹 킬러즈(The Killers)의 Human 뮤직 비디오를 촬영한 곳이기도 합니다.

사진 오른쪽에 12번 도로가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12번 도로를 여행하던 아저씨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근처의 풍경



어느덧 12번 도로는 끝나고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몇마일이고 직선으로 뻗어있는 24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네비게이션은 좌회전을 하라고 하는데 일직선으로 뻗은 길뿐 특별한 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치고 가니 유턴을 하라고 안내가 나와 잠시 고민하다 혹시 놓친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를 돌려 다시 돌아가 봅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분기점에 가보니 곧게 뻗은 비포장길이 있기는 있지만 문이 닫혀 있고 4WD only라고 쓰인 팻말이 옆에 있습니다. 혹시 길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란 걱정과 오프로드를 갈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빌린 4륜구동 차를 드디어 써 보나란 기쁨이 만나 또 잠시 고민을 하다 일단 가는데 까지는 가보자란 생각에 문을 열어젖히고 차를 몰고 들어갑니다. 바닥이 모래라서일까요, 어떤 곳은 일반 도로와 별 차이가 없다가도 어떤 곳은 제법 굴곡도 있고 바퀴가 조금씩 헛도는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10분여를 달린 다음 갑자기 눈 앞에 길과 교차하는 바닥이 패인 깊은 골이 나타납니다. 차를 세우고 보니 깊이도 제법 되는데다 경사도 급해서 차가 가기에 무리가 있을것 같습니다만 골의 건너편 길에는 계속해서 타이어 자국이 남아있는 길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잘만하면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사람도 차에서 내려서 보더니 잘하면 지나갈 수 있을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가보자! 마음을 먹고 차를 몰고 내려가는데 내리막에서 차 밑에서 바닥과 긁히는 소리가 조금 나면서 차가 앞으로 나아거더니 오르막을 조금 오르다말고 멈춰서 버립니다. 과감한 탈출을 기대하며 핸들을 돌려보면서 악셀을 밟아보니 땅이 패이면서 오히려 바퀴가 밑으로 빠지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는게 나을것 같아 후진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아보니 차가 조금씩 뒤로 움직이며 내려온 오르막을 올라가다가 다시 멈추어버립니다. 이번에는 골에 앞 머리를 박고 멈춘 모양새가 되어버렸습니다. 차에서 내려보니 어떤 바퀴는 헛돌고 어떤 바퀴는 아예 회전하지를 않습니다.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윗옷을 벗어서 바퀴 밑에 깔아도 보고 손으로 모래를 좀 파내기도 해 보고 트렁크에서 자키를 꺼내서 차를 조금 들어도 보았지만 자동차는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집사람은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하자고 하지만 트럭을 여기까지 불러서 차를 빼느니 그 사이에 조금만 더 모래를 파내면 차가 빠져나갈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리 저리 모래를 파내다 몇차례 차를 빼려고 시도하는데 갑자기 본넷에서 연기가 나옵니다. 서둘러 엔진을 끄고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하니 이제는 아예 시동도 걸리지 않습니다. 어쩔수 없이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는데 설상가상으로 전파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 사이 해는 조금씩 땅을 향해 기울어가고 있습니다.

사막에 가까운 황무지에서 차는 모래구덩이에 빠졌고 엔진은 고장났으며 핸드폰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이제는 걸어서 돌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짐을 차안에 놓아두고 최소한의 짐만 든채로 왔던 길을 되돌아서 걷기 시작합니다. 차로는 조금밖에 이동하지 않은것 같지만 푹푹 빠지는 모래를 아이와 함께 걸으려니 한참을 걸어도 도로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 앞의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길이 보일거라고 아이를 달래며 가보면 길이 보이지 않고 다시 저기까지만 가보자고 몇번 아이를 달래며 조금 밖에 남지 않은 미지근한 물을 나누어 마시면서 한시간 정도 걸었을까요? 저기 멀리서 작은 자동차들이 달려가는 도로가 마침내 보입니다. 겨우 도로까지 나왔지만 여기서도 핸드폰은 동작하지 않습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면서 주유소와 정비소가 있었던게 기억나서 남쪽으로 가는 차를 기다려 보지만 드물게 보이는 차들은 모두 북쪽으로 가는 것들 뿐이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요. 마침내 북쪽에서 오는 검정색 승용차가 보입니다. 세 식구 모두 열심히 손을 흔드니 천천히 서는 승용차에는 중년의 서양인 부부가 타고 있었고 우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봅니다. 대충 어설픈 영어로 차가 모래에 빠지고 고장났다고 하니 자신들의 숙소가 모아브에 있다며 괜찮다면 태워주겠다고 합니다. 차 뒷자석에서 모아브로 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보스톤에서 휴가차 온 부부이며 도로 반대편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우리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차를 돌려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사막에는 밤이면 방울뱀이나 코요테가 나올수도 있다고 하니 그 분들의 친절과 선의가 고마울 뿐 아니라 생명의 은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24번 도로의 풍경


구글 어스에서 찾아 본 사고지점. 오른쪽 아래의 24번 도로에서 왼쪽으로 뻗어나가는 비포장 도로와 차가 걸려버린 골까지 나와 있다. 왼쪽 위의 해마같이 생긴 곳이 위쪽 사진의 수평선 왼쪽에 보이는 암석이며 골은 아마도 비가 내릴때 암석 주변으로 흘러내린 빗물에 의해 형성된 듯 해마의 꼬리 부분에서 점차 가늘어지며 아래쪽으로 내려온다. 오른쪽에 고블린 밸리 국립공원과 그 위쪽으로 나 있는 정상적인 길이 보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2시간여를 달려 모아브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8시가 좀 넘은 시간.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간단히 햄버거로 저녁을 때운 다음 숙소로 돌아와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차가 모래에 빠졌다는 말을 하니 오프로드에서의 사고는 보상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네비게이션이 가라고 한 길을 갔을 뿐이다라고 항의를 하니 자신은 판단을 못내리겠다며 내일 아침 매니저와 이야기하기로 하고 통화를 마칩니다. 사막에서 무사히 빠져나온것은 운이 좋았지만 갈아입을 옷도 없어 모래투성이 옷을 입은채 지치고 피곤한 몸과 우울한 마음으로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셋째날 이동경로



체크아웃을 위해 짐을 싸는데 아이의 지갑이 없다고 합니다. 아이가 몇달동안 모은 용돈을 미화로 바꾸어 온 것인데 어제 밤 아이가 호텔의 기념품 가게에서 작은 장난감을 샀으니 분명히 호텔안에서 없어졌는데 가게에 가서 물어봐도 지갑은없다고 합니다. 저녁 직원이 지갑을 챙겨갔을 가능성이 많은것 같지만 증거가 없는데다 저녁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어볼수도 없는 일. 슬퍼하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다고 달래면서 체크 아웃을 합니다. 오늘은 라스베가스의 북동쪽에 위치한 자이언(Zion) 캐년을 둘러보고 브라이스 (Bryce) 캐년까지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모님과 아이는 어제부터 계속해서 후버댐(Hoover Dam)을보고 싶어 합니다. 트렌스포머에서 메가트론과 큐브를 보관하고 있던 바로 그 곳. 하지만 후버댐은 라스베가스의 남동쪽, 네바타주와 아리조나주의 경계에 위치합니다. 여행 계획을 세울때 들러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했던게 모두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 잠시고민한 다음 일단 둘러보기로 하고 후버댐을 향해 달립니다. 한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후버댐에 도착했고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잠시 댐을 둘러봅니다. 댐을 만드는 도중에 거의 백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936년 완공 당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콘크리트구조물이었다고 하지만 요즘같이 높이에 익숙해진 세대로서는 조금은 평범한 하지만 익숙한 구조물 정도로 다가왔습니다.

후버댐, 오토봇과 디셉티콘들은 어디에?



12시경 다시 라스베가스를 거쳐 자이언 캐년에 도착한 시간이 3시반경. 자이언 캐년은 흰색과 주황색이 섞여있는 거대한 돌산들 사이에위치한 비교적 좁은 계곡으로 좁은 계곡 내부 도로는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일반 차량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세우고 공원 안을 다니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장 안쪽의 정류장인 시나와바의 사원(Temple of Sinawava)이란 곳까지바로 들어갑니다. 중간에 위핑 락(Weeping Rock) 정류장에서는 꼭 가보고 싶었던 엔젤스 랜딩 트레일(AngelsLanding Trail)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만, 후버댐에 들러온다고 시간을 많이 까먹었고 막상 트레일이 있는 돌산의급경사를 보니 집사람과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란 걱정도 들어서 아쉽지만 그냥 건너뛰기로 합니다. 좁은 계곡이 갑자기 넓어져동그런 사원같은 공간을 형성한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해서 강을 따라 나 있는 짧은 리버 사이드 트레일을 따라 걸어가 봅니다.강가를 따라 비교적 평탄한 좁은 길을 잠시 걸으니 어느덧 길은 끝나고 계곡이 좁아져 강속에 들어가서 거슬러 올라가야하는내로우즈(Narrows)란 곳이 나옵니다. 오전에 출발하면 하루 코스로 다녀올수도 계속 상류로 가면 캠핑을 할수도 있다고 하는데짧은 여정의 우리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대충 트레일의 기분만 느껴보고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돌아옵니다.
엔젤스 랜딩 트레일

엔젤스 랜딩 트레일로 가는 길


자이언 캐년의 풍경


리버사이드 트레일이 끝나고 본격적인 내로우즈가 시작되는 곳



자이언 캐년에서 브라이스 캐년으로 가는 길은 계곡에서 빠져나와서 빠른 도로를타고 둘러가는 방법이 있고 돌산을 뚫어 만든 자이언 산 카멜 터널(Zion Mount Carmel Tunnel)을 지나서 가는방법이 있습니다. 경치가 좋은 후자의 길을 택하고 굽이 굽이 돌아가는 길을 올라가다보니 아무런 조명도 없는 깜깜하고 좁은 터널이나오고 터널을 빠져나와 작은 고개를 넘으니 갑자기 숲이 나오면서 주위 경치가 바뀝니다. 구글맵에서 알아본 자이언 캐년에서브라이스 캐년까지의 예상시간은 2시간 30분. 하지만 6시가 지나면서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왕복 2차선 도로의 제한속도는 65 마일, 아무런 가로등도 마을도 없는 깜깜한 도로를 헤드라이트에만 의존해서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으니차가 길바깥으로 빠져나가거나 갑자기 앞에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오싹한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도로가에 쓰러진 몇마리의동물을 보았으며 이중 한 놈은 덩치가 제법 큰 사슴같았는데 네 다리를 곧게 뻣은 채로 누워있었고 헤드라이트의 불빛아래 순식간에스쳐지나간 다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리가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던것 같기도 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경련이 실제로있었는지 상상속에서 그렇게 보였던 것인지 애매합니다.

브라이스 캐년으로 가는 풍경



몇개인가의 작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을 입구에 스피드건으로 현재의 속도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만들어서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도록 유도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경우 순찰차가 마을 한곳에 서있었습니다. 과속으로 지나가면 영화에서 본 것처럼 햄버거와 콜라를 먹던 보안관이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올지 잠시 궁금하기도했습니다만 딱지를 떼이거나 영화처럼 이상한 보안관을 만나 사고에 말려드는 역할을 맡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얼마나달렸을까요. 어둠속에서 네비게이션만 바라보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걱정한지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브라이스 캐년에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국립공원 입구에서 레인저들이 돈을 받고 일주일간 유효한 입장권을 내어줍니다만 저녁 9시경에는 아무도없어 그냥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 체크인 하면서 물어보니 숙소의 식당은 곧 문을 닫는다길래 다시 차를 몰고 나와 공원바깥쪽의 Ruby's Inn이란 곳에 들러 뷔페식 저녁식사를 배불리 먹고 숙소에 돌아가 둘째날 여정을 마감합니다.

그랜드 캐년, 자이언 캐년, 브라이스 캐년에 관하여

미서부의 콜로라도 고원은 산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분지에 쌓이면서 무게에 의해 아래쪽으로 가라앉은 다음 광물과 퇴적물의 무게로 암석이 되고 이것이 융기되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암석층이 기울어져 있어 브라이스 캐년의 가장 밑바닥이 자이언 캐년의 위쪽에해당하고 자이언 캐년의 가장 아래층이 그랜드 캐년의 가장 위쪽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이를 그랜드 스테어라고도 부릅니다. 그랜드캐년과 자이언 캐년은 고원이 콜로라도 강과 버진강에 의해 침식되어 형성되었지만 브라이스 캐년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해 암석사이에 흘러든 물이 얼면서 쐐기 역할을 하면서 돌을 쪼개고 이것이 다시 비와 바람의 작용으로 특징적인 후두(hoodoo)라고하는 돌기둥 모양을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Grand StairCase

브라이스 캐년의 후두가 만들어지는 과정


둘째날 이동경로


추석기간 일주일간 휴가를 내어 미국 서부에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여행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자연을 많이 볼 수 있는 코스를 생각해서 그랜드 캐년, 자이언 캐년, 브라이스 캐년, 아치스 캐년, 모뉴멘트 밸리까지 둘러보는 계획을 짰습니다. 여행 계획은 론리 플래닛의 SouthWest USA란 책을 많이 참고 했고 구글 어스에 올라와 있는 사용자들의 사진들을 보고 방문지를 결정했습니다. 대략의 코스와 숙박 계획을 잡은 다음 출발전까지 한 것은 숙소와 렌트카 예약뿐. 몇번 여행을 하다보니 처음의 긴장감이 많이 사라지고 나름 요령도 생겨서 이동편과 숙소만 대략 결정되고 나면 비행기 표와 여권만 챙기고 모자라는 것은 현지에서 구하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얄팍한 생각에 고생 꽤나 하게 됩니다만...

출발일 아침 김해 공항으로 갑니다. 항공편은 부산에서 미국으로 갈때 흔히 애용하는 노스웨스트 항공. 일본에서 갈아타야 하지만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인천에서 갈아타나 일본에서 갈아타나 시간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토요일 아침 출발해서 일요일 저녁 돌아오는 비행기 편이라 시간대가 좋고 일본 공항의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인 터넷으로 미리 좌석 지정도 해 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무인 탑승 수속을 밟으려니 옆에 있던 직원이 집사람과 아이의 이스타를 받았냐고 물어봅니다. 이스타...란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전자여권은 비자가 없어도 된다고 하길래 그냥 탑승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인터넷의 이스타란 곳에서 전자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때가 대략 비행기 출발 한시간 반쯤 전. 갑자기 비행기를 타지 못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직원에게 이야기 들은데로 3층의 무료 인터넷 부스로 급히 가서 "이스타 미국비자"로 네XX 검색을 하니 여러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or.kr로 끝나는 도메인이 맞을것 같아 신청을 하니 일인당 신청료 3만원을 내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 이런걸로 장사를 하다니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사람과 아이 이름으로 신청을 하니 24시간 이내로 비자가 발급된다고 하네요. 이제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빨리 좀 처리해 달라고 이야기 하려고 사이트에 나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거니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사이트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래부분에 회사 주소가 나와있고 사장 이름도 나와있는게 우리나라 회사입니다. 뭔가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블로그쪽을 검색해 보니 미국 정부의 주소가 따로 나와 있습니다. 그곳으로 접속해서 집사람과 아이의 신상정보와 여권번호를 넣으니 바로 허가 판정이 떨어집니다. "대기"나 "불허" 판정도 있을수 있다고 하니 반드시 출발전 여유있게 미리 전자비자를 받도록 해야되겠습니다. 그래도 공항이 그리 붐비지 않아서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사이트에는 출발하기전 이미 비자를 받았으니 취소해 달라고 했더니 나중에 결제를 취소해 주었더군요. 미국 사이트도 한국어로 이용할 수 있고 입력하는 정보도 동일하니 반드시 정확한 주소를 찾아서 전자 비자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알지못한 저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돈을 받은 사이트만을 보여주는 포털과 or.kr 도메인을 받은 회사에도 은근히 화가 납니다.

동경의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고 LA에 도착하니 대략 토요일 오전 10시경. 한참을 날아왔는데도 출발한 시간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하게 되니 기분이 좀 이상하지만 하여튼 쨍하고 맑은 날씨가 우리를 맞이해 줍니다. 터미널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렌트카 회사에 도착하니 차를 빌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서야 예약한 차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토요타의 RAV4란 SUV를 예약했지만 차가 다 빠져나갔다고 같은 급의 포드 Escape를 빌려줍니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 열쇠를 받아 차에 짐을 싣고 네이게이션에 오늘의 목적지인 라스베가스를 입력한 다음 출발합니다. 렌트카 회사의 네이게이션이 한국어도 지원해 주어서 바꾸어 보았더니 어순이 영어인데다가 그나마 번역이 이상한지 영어보다 더 알아듣기 힘든 한국말이 나와 그냥 영어로 설정하고 갑니다.

프리웨이에 올라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달리다 보니 어느덧 건물이 띄엄띄엄 보이며 길가에 큰 쇼핑몰들이 보이는 시외가 되었습니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회색을 약간 가미한 연한 노란빛의 평탄한 땅에 가끔씩 솟아오른 작은 (아마도 가까이서보면 작지 않겠지만) 언덕들이 있고 메마른 땅에는 나무들이 거의 없고 작은 잡목들이 띄엄 띄엄 흩어져 있습니다. 가끔씩 지나치는 작은 강의 주변으로는 푸른 나무들과 잔디가 자라고 아마도 오래전부터 있었을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만 땅의 대부분은 사람들에게는 별 유용성이 없을 황무지들입니다. 개척시대 아무런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채 마차에 가족과 짐들을 가득 싣고 이런 곳을 지나갔을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막막하고 절박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점심을 먹고 심심한 풍경속을 거의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한두시간 계속 달리다 보니 아이와 집사람은 이미 잠이 들어있고 저도 자꾸만 졸음이 쏟아집니다. 사고를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쇼핑 센터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잠깐 세우고 잠시 쪽잠을 청하고 나니 두드려 맞은 듯한 몸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졸음은 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



라스베가스에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 한 시간이 대략 6시경. 라스베가스의 유명한 호텔들이 늘어서 있는 스트립을 따라 짧은 저녁 관광을 나섭니다. 길가 보도를 따라서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멕시코 사람들로 보이는 삐끼들이 반쯤 벌거벗은 여성들의 사진이 실려있는 명함만한 광고들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광고지를 손바닥에 두세번 두드려 따닥 소리를 낸 다음 권하는 동작으로 나눠주는데 소리로 지나가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도 하지만 나름 리듬감을 살려 따분함을 덜어주기도 할 것 같습니다. 스트립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양한 나이와 인종의 관광객들로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사람부터 티와 반바지까지 다양한 복장으로 다니고 있지만 모두들 약간은 들떠보입니다. 각 호텔들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나름의 볼거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호텔이 해가 지기 전에는 약간은 조잡한 모조품의 느낌이었고 어둠이 조잡한 바탕색을 가려준 다음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광고 화면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곳은 아마도 가장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 오후부터 밤까지 15분에서 30분 간격으로 한다는 분수쇼는 다른 호텔들의 볼거리 보다 확실히 독창적이고 고상하며 우아한 장관이었습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게 늘어서 화려한 조명을 맞으며 음악에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물줄기들은 스트립 남쪽의 룩소까지 대부분의 호텔을 둘러보고 돌아오면서 느꼈던 피로감을 잊고 오션스 일레븐의 마지막 처럼 미소 짓게 해 주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온 시간이 대략 12시경. 피곤함에 지쳐 대충 씻고 금방 잠이 듭니다.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밤풍경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


첫날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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