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기간 일주일간 휴가를 내어 미국 서부에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여행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자연을 많이 볼 수 있는 코스를 생각해서 그랜드 캐년, 자이언 캐년, 브라이스 캐년, 아치스 캐년, 모뉴멘트 밸리까지 둘러보는 계획을 짰습니다. 여행 계획은 론리 플래닛의 SouthWest USA란 책을 많이 참고 했고 구글 어스에 올라와 있는 사용자들의 사진들을 보고 방문지를 결정했습니다. 대략의 코스와 숙박 계획을 잡은 다음 출발전까지 한 것은 숙소와 렌트카 예약뿐. 몇번 여행을 하다보니 처음의 긴장감이 많이 사라지고 나름 요령도 생겨서 이동편과 숙소만 대략 결정되고 나면 비행기 표와 여권만 챙기고 모자라는 것은 현지에서 구하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얄팍한 생각에 고생 꽤나 하게 됩니다만...

출발일 아침 김해 공항으로 갑니다. 항공편은 부산에서 미국으로 갈때 흔히 애용하는 노스웨스트 항공. 일본에서 갈아타야 하지만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인천에서 갈아타나 일본에서 갈아타나 시간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토요일 아침 출발해서 일요일 저녁 돌아오는 비행기 편이라 시간대가 좋고 일본 공항의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인 터넷으로 미리 좌석 지정도 해 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무인 탑승 수속을 밟으려니 옆에 있던 직원이 집사람과 아이의 이스타를 받았냐고 물어봅니다. 이스타...란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전자여권은 비자가 없어도 된다고 하길래 그냥 탑승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인터넷의 이스타란 곳에서 전자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때가 대략 비행기 출발 한시간 반쯤 전. 갑자기 비행기를 타지 못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직원에게 이야기 들은데로 3층의 무료 인터넷 부스로 급히 가서 "이스타 미국비자"로 네XX 검색을 하니 여러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or.kr로 끝나는 도메인이 맞을것 같아 신청을 하니 일인당 신청료 3만원을 내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 이런걸로 장사를 하다니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사람과 아이 이름으로 신청을 하니 24시간 이내로 비자가 발급된다고 하네요. 이제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빨리 좀 처리해 달라고 이야기 하려고 사이트에 나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거니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사이트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래부분에 회사 주소가 나와있고 사장 이름도 나와있는게 우리나라 회사입니다. 뭔가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블로그쪽을 검색해 보니 미국 정부의 주소가 따로 나와 있습니다. 그곳으로 접속해서 집사람과 아이의 신상정보와 여권번호를 넣으니 바로 허가 판정이 떨어집니다. "대기"나 "불허" 판정도 있을수 있다고 하니 반드시 출발전 여유있게 미리 전자비자를 받도록 해야되겠습니다. 그래도 공항이 그리 붐비지 않아서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사이트에는 출발하기전 이미 비자를 받았으니 취소해 달라고 했더니 나중에 결제를 취소해 주었더군요. 미국 사이트도 한국어로 이용할 수 있고 입력하는 정보도 동일하니 반드시 정확한 주소를 찾아서 전자 비자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알지못한 저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돈을 받은 사이트만을 보여주는 포털과 or.kr 도메인을 받은 회사에도 은근히 화가 납니다.

동경의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고 LA에 도착하니 대략 토요일 오전 10시경. 한참을 날아왔는데도 출발한 시간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하게 되니 기분이 좀 이상하지만 하여튼 쨍하고 맑은 날씨가 우리를 맞이해 줍니다. 터미널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렌트카 회사에 도착하니 차를 빌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서야 예약한 차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토요타의 RAV4란 SUV를 예약했지만 차가 다 빠져나갔다고 같은 급의 포드 Escape를 빌려줍니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 열쇠를 받아 차에 짐을 싣고 네이게이션에 오늘의 목적지인 라스베가스를 입력한 다음 출발합니다. 렌트카 회사의 네이게이션이 한국어도 지원해 주어서 바꾸어 보았더니 어순이 영어인데다가 그나마 번역이 이상한지 영어보다 더 알아듣기 힘든 한국말이 나와 그냥 영어로 설정하고 갑니다.

프리웨이에 올라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달리다 보니 어느덧 건물이 띄엄띄엄 보이며 길가에 큰 쇼핑몰들이 보이는 시외가 되었습니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회색을 약간 가미한 연한 노란빛의 평탄한 땅에 가끔씩 솟아오른 작은 (아마도 가까이서보면 작지 않겠지만) 언덕들이 있고 메마른 땅에는 나무들이 거의 없고 작은 잡목들이 띄엄 띄엄 흩어져 있습니다. 가끔씩 지나치는 작은 강의 주변으로는 푸른 나무들과 잔디가 자라고 아마도 오래전부터 있었을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만 땅의 대부분은 사람들에게는 별 유용성이 없을 황무지들입니다. 개척시대 아무런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채 마차에 가족과 짐들을 가득 싣고 이런 곳을 지나갔을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막막하고 절박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점심을 먹고 심심한 풍경속을 거의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한두시간 계속 달리다 보니 아이와 집사람은 이미 잠이 들어있고 저도 자꾸만 졸음이 쏟아집니다. 사고를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쇼핑 센터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잠깐 세우고 잠시 쪽잠을 청하고 나니 두드려 맞은 듯한 몸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졸음은 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



라스베가스에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 한 시간이 대략 6시경. 라스베가스의 유명한 호텔들이 늘어서 있는 스트립을 따라 짧은 저녁 관광을 나섭니다. 길가 보도를 따라서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멕시코 사람들로 보이는 삐끼들이 반쯤 벌거벗은 여성들의 사진이 실려있는 명함만한 광고들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광고지를 손바닥에 두세번 두드려 따닥 소리를 낸 다음 권하는 동작으로 나눠주는데 소리로 지나가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도 하지만 나름 리듬감을 살려 따분함을 덜어주기도 할 것 같습니다. 스트립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양한 나이와 인종의 관광객들로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사람부터 티와 반바지까지 다양한 복장으로 다니고 있지만 모두들 약간은 들떠보입니다. 각 호텔들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나름의 볼거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호텔이 해가 지기 전에는 약간은 조잡한 모조품의 느낌이었고 어둠이 조잡한 바탕색을 가려준 다음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광고 화면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곳은 아마도 가장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 오후부터 밤까지 15분에서 30분 간격으로 한다는 분수쇼는 다른 호텔들의 볼거리 보다 확실히 독창적이고 고상하며 우아한 장관이었습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게 늘어서 화려한 조명을 맞으며 음악에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물줄기들은 스트립 남쪽의 룩소까지 대부분의 호텔을 둘러보고 돌아오면서 느꼈던 피로감을 잊고 오션스 일레븐의 마지막 처럼 미소 짓게 해 주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온 시간이 대략 12시경. 피곤함에 지쳐 대충 씻고 금방 잠이 듭니다.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밤풍경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


첫날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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